오늘은 코드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정했습니다. 이 세상이 뭔지.

고민의 시작

기능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방향이 흔들렸습니다. 호감도 시스템, 퀘스트, 카드 수집, 술래잡기, 상점... Stardew Valley의 시스템을 하나씩 따라가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에 내장된 오픈월드는 대체 뭐가 되어야 하는가?

Steam에서 "오픈월드 RPG"를 검색해서 찾은 게임이 아닙니다. ugonfor.kr에 들어온 사람이 Playground 탭을 눌렀을 때 마주하는 세계. 이 맥락이 완전히 다릅니다.

네 가지 후보

A. 디지털 어항

NPC들이 알아서 살아가고, 방문자는 구경만. Orb.Farm처럼 관찰하는 재미. 단순하지만 플레이어가 할 게 없음.

B. 마을 도슨트

가이드 NPC가 세상을 소개하는 인터랙티브 투어. 포트폴리오의 확장판. 한 번 보면 끝이라 리플레이가 약함.

C. 느린 삶의 마을

Animal Crossing + AI NPC. 숫자 없이 NPC의 태도 변화로 관계를 체감. AI의 기억/맥락을 가장 잘 살리는 방향.

D. 작은 생태계

Stanford AI Town 축소판. NPC끼리 자율 상호작용. 가장 "살아있지만" 개인 프로젝트로 유지하기엔 복잡도와 비용이 과도.

결론: C + B + A

느린 삶의 마을을 베이스로, 도슨트 온보딩의 진입점, 관조 모드의 첫인상을 결합합니다.

한 문장으로:

"어떤 개발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작은 마을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주민들이 나를 기억해줬다."

3단계 방문자 경험

  • 5초 체류 → 살아 움직이는 마을을 관조 (A)
  • 첫 방문 → 안내원 유진이 다가와 환영하고 안내 (B)
  • 재방문 → NPC가 기억하고 맞이. 대화가 이어짐 (C)

호감도 시스템의 모순

Stardew Valley에서 호감도가 작동하는 이유는, 각 레벨에 수작업 컷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다음 콘텐츠를 해금하기 위한 진행도 바"일 뿐.

AI NPC 세계에서는 해금할 수작업 콘텐츠가 없습니다. 대화는 이미 무한합니다. 호감도 숫자는 목적지 없는 진행도 바가 됩니다.

결정: 호감도 숫자를 플레이어에게 노출하지 않습니다. 대신 NPC의 말투와 행동이 관계를 말하게 합니다.

  • 처음: 존댓말, 경계
  • 여러 번 대화: 반말, 먼저 인사
  • 깊은 관계: 속마음, 비밀 이야기

함께 바뀐 것들

시간 시스템

매번 오전 8시 시작 → 실제 시간과 1:1 동기화. 지금 밤이면 게임도 밤. 세상은 내가 없어도 돌아가고 있었다는 느낌.

AI NPC 대화

룰 베이스 대화 제거. E키로 말 걸어도 LLM이 인사를 생성합니다. LLM이 안 되면 NPC가 "나 말하는 법을 까먹은 거 같아..."라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세계관.

감정 분석

플레이어 텍스트 regex → NPC의 LLM 응답 텍스트 분석으로 전환. AI가 맥락을 이해하고 답했으므로, 그 응답의 톤을 분석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도슨트 NPC

안내원 유진이 안내소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게임 시작 3초 후 직접 다가와서 환영합니다.

퀘스트 게시판

사이드바 UI 패널 대신 월드 내 물리적 게시판으로 변경. 나무 기둥에 종이가 붙어있는 게시판이 광장에 서 있고, 떠다니는 📜 라벨로 멀리서도 보입니다.

술래잡기

플레이어가 쫓는 게 아니라 NPC가 쫓고 플레이어가 도망. 쿨다운 제거로 즉시 재도전 가능.

앞으로

이 정체성이 정해진 지금, 다음 작업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습니다:

  1. NPC 기억 시스템 강화 — 이전 대화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것이 핵심 가치
  2. 호감도 UI 숨기기 — 숫자 대신 NPC 행동 변화로 관계 체감
  3. 관조 모드 — 아무것도 안 해도 NPC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코드 한 줄보다 방향 한 줄이 더 중요한 날이었습니다.